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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남도 전시 공간

G&J 갤러리

G&J 광주·전남 갤러리
G&J 광주전남갤러리는 광주.전남 상생협력의 발전을 위하여 두 지자체가 공동운영하며
지역 작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남도의 미술을 더욱 알리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예향남도가 문화예술로 다시 부흥하고, 광주·전남의 향토 작가들이 새로운 르네상스를 일궈나갈 터전을 중앙 미술의 중심 인사동에 마련하였습니다.
국내 최초 첫 협업사례로 2016년 10월 26일 ‘수묵으로 사유하다’ 개관전 이래, 다양한 미술장르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기획전과 대관전을 통하여 남도미술의 과거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를 모색하고 세계와 문화예술로 소통하는 수준 높은 문화공간이 되고자 합니다.
남도의 역량 있는 작가들의 기획전을 통해 미술문화를 선도할 것이며, 유연하고 공정한 과정을 기준으로 선정된 작가들에게 쾌적하고 양질의 공간을 제공합니다.
앞으로 「G&J 광주·전남 갤러리」는 지속적인 작가 지원을 통해 다양한 전시를 선보이며 미래 후손들에게 당당하고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 갈수 있도록 정진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감사합니다.

G&J 갤러리 전시 안내
2019년
2019년 08월
  • 선점숙 개인전-탐고음금(探古吟琴)
    G&J갤러리전시
    선점숙 개인전-탐고음금(探古吟琴)
    기간
    2019-08-28 ~ 2019-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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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여 한학과 묵향을 벗 삼아 걸어 온 선점숙 작가는 대한민국미술대전을 비롯한 여러 공모전을 통해 서예계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으며, 현재 대한민국미술대전 등 국내 유수 서예대전의 초대작가로서 각종 공모전의 심사위원으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밀라노엑스포 한국의 날 기념 현대미술대전, 세계서예 전북비엔날레전,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전 등의 그룹전에 참여한 바 있는 작가는 회갑을 맞이하여 처음 개최하는 이번 개인전에서 절제된 선과 운치 있는 필력으로 청아한 작품 세계를 선보인다. “탐고음금(探古吟琴)”은 옛것을 깊이 연구하고 풍류를 읊는다는 뜻으로, 선점숙 작가의 호 ‘고금(古琴)’과 닿아 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논어, 맹자 등 사서삼경(四書三經)에 담긴 성현들의 명구(名句)와 옥조(玉條)를 발췌하여 필묵(筆墨)을 통한 예술로 승화시킨 한문서예 작품들을 선보인다. 작가는 필묵의 기교를 앞세우기보다 사랑과 정성이 묻어나는 창작을 함으로써 성현들의 촌철(寸鐵)이 수천 년의 세월을 넘어 오늘날에도 감계(鑑誡)의 효용이 있음을 보여준다. 선점숙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한국인들이 좋아하는 명시와 창작시, 성경 소구 등을 소재로 다양한 한글서예 작품도 선보인다. 특히 도자기 작품 10점은 예술이 일부 계층만이 향유할 수 있는 점유물이 아니라 일상생활에도 얼마든지 녹아들 수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서예의 영역을 확장해 보인다. 작가 일가의 어린이들을 주제로 한 한글서예 작품 “반짝이는 별들” 12점은 아이들을 향한 작가의 깊은 애정이 깃들어 있어 옛 성현의 말씀 못지않은 감동을 자아내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다.

  • 강금복 개인전-달꿈 자연속으로
    G&J갤러리전시
    강금복 개인전-달꿈 자연속으로
    기간
    2019-08-21 ~ 201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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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즈막히 깔린 듯 부드럽게 솟은 산의 능선은 외경의 포근함과 내면의 강하면서 소담스런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그 속의 또다른 매화, 소나무는 고매함과 강인함을 내포하고 있으며 세속으로부터 초연한 동양적 정서이며 자연의 경이로움이 때론 사의적(寫意的) 느낌을 주곤 한다. 달은 어머니 품 속 같은 평안함과 아련한 추억의 발로이다. 이러한 자연의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어 합일되기 위한 내 자신의 표현이다.

  • 이종숙 개인전-행복한 기억을 걷다
    G&J갤러리전시
    이종숙 개인전-행복한 기억을 걷다
    기간
    2019-08-14 ~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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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숙 화가의 ‘Happyday Series’는 생명의 탯줄인 자연에서 행복을 모색하고자 하는 작품이다. 작가자신의 행복했던 기억에서 행복한 상상으로의 전환을 통해 관람객 각 개인들의 경험을 되물어 떠올리게 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 중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 중 Happyday-Forest(숲)은, 바람이 숲을 스치며 비춰지는 반짝거림을 그림에 담아 고통스러운 현실을 마주하고 있는 이들에게 행복했던 기억들과 새로운 상상을 불러 일으키게 함으로써 스스로 아픔을 치유하고 용기를 얻을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따뜻한 어루만짐이 느껴지는 이유이다. 나무를 소재로 한 작가의 초기 작품은 아침 안개가 내려앉은 야외스케치 길에서 만난 가로수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가로수가 등장하는 작품들을 시기별로 입체적 묘사를 통한 나무의 사실적 표현으로부터, 원근이 유지된 평면적 묘사와 같은 계열의 색상으로 표현된 가로수들로 점차 단순화되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나무가 뿌리를 내린 그 곳으로부터 단순한 일탈이 아닌 ‘상상의 공간으로 나무들을 유영하게 함’으로써 가로수에서 숲으로 표현의 영역을 확장시키는 변화를 보이고 있다. 자유로운 형태와 절묘한 색상의 조합으로 작가 스스로 즐거운 변화를 모색하면서 관객들에게 내재된 행복한 느낌에 대한 기억을 노크하려는 시도가 느껴지는 이유이다. 숲과 나무를 ‘그 비밀이 온전히 밝혀진 적이 없는, 해석되어야 할 의미로 가득한 세계’로 바라보면서도, ‘여행을 떠나기 전의 설렘과 여행 중 동반자들과 즐거운 경험을 추억하는 소중함’이 작업의 모티브에 베어 있어서일까. 자신의 상상이 날개 짓 할 숲에 대한 동경심과 순수한 내면이 작품에서 느껴지며, 깊은 우울함과 슬픔, 분노와 같은 격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끼어들 여지가 없이, 평화롭고 행복하며 즐거움을 안겨주는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화려함과 수수함이 부드럽게 어우러지는 화가만의 특별한 색채감은 따뜻하고 포근하며 때론 강렬하여, 절망과 슬픔의 자존감에 따뜻한 온기와 힘찬 용기를 불어넣는 구원이 되기도 할 것이다. 비구상적 표현이 단순화 된 숲들 사이에 어우러진 어떤 작품들은 가끔 관객만 남겨두고 마치 자신만의 행복한 기억과 상상의 세계로 혼자 날아가 버린 듯하게 보일 때도 있지만, 그림 속 숲 을 따라 걷는 관객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과 즐거운 상상이 가득한 클리세를 마주하게 한다. 일상에서의 작가 자신의 작은 행복에 대한 기억을 상상력으로 확장시켜 자연의 따뜻한 품을 빌어 관객에게 행복한 느낌을 시도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아름답다. 이제 나의 나무들이 유영을 하기 시작하였다. 항상 머물며 정지해 있던 곳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형태와 색상으로 즐겁게 변화하는 것이다. 기둥과 가지, 그리고 이파리가 분리되어 서로를 바라보기도 하며 불현듯 다른 세계에서 떠다니기도 한다. 우주 안에 또 다른 우주처럼 숲 속에는 또 다른 숲들이 살아 숨쉬고 상상 속의 이야기가 태어난다. 이러한 풍경이 낯설지 않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면 행복한 느낌은 모두의 것이 되지 않을까? - 작가노트 中

  • 공병 개인전-채움 비움
    G&J갤러리전시
    공병 개인전-채움 비움
    기간
    2019-08-07 ~ 201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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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병의 조각 빛이 열어놓은 내면풍경 혹은 추상풍경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미술사를 관통하는 가장 핵심적인 단어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재현을 들 수가 있다. 미술사적 용어로는 구상과 형상미술이 여기에 해당한다. 어쩜 미술사 전체는 이런 재현의 역사에 다름 아니었다. 조각 역시 마찬가지. 이런 재현의 역사로부터 결별한 것이 모더니즘 패러다임이고 모더니즘 조각이다. 회화로 치자면 점 선 면 색채와 같은, 그리고 조각의 경우에는 형태와 구조, 양감과 질감 그리고 물성과 같은 형식요소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회화가 성립하는 근거나 조각이 가능해지는 지점은 내용이 아니라 혹은 내용이라기보다는 이런 형식적 성질에 의해서이다. 조각으로 치자면 형태와 구조, 양감과 질감 그리고 물성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조각이라고 본 것이다. 모더니즘 조각은 바로 이처럼 조각의 본질 내지 본성이라고 부를 만한 형식적 성질 내지 형식요소에 주목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예외가 없지 않지만, 그러므로 어쩜 모더니즘 이후 조각은 이런 조각의 본질에 대한 정의와 재정의 그리고 해석의 역사로 볼 수 있겠고, 그 해석 여부를 반영하고 확장한, 심화하고 변주해온 현재진행형의 역사로 볼 수가 있겠다. 세대로 보나 성향으로 보아 작가 공병은 이런 모더니즘 조각의 강령으로 견인되는 경우로 보인다. 가급적 형상을 최소화하면서 나무면 나무, 돌이면 돌, 철이면 철 고유의 물성이 부각되게 만든다. 여기에 형상마저도 어떤 내용을 전제하기보다는 소재 자체가 암시하는 형상, 반쯤은 타고난 형상이 저절로 길을 찾아가도록 길을 터주는 태도를 취한다. 조형적 개입을 최소화함으로써 자연 소재 고유의 본성이 부각되게 만든다. 그리고 여기에 작가는 일종의 관계의 미학을 도입한다. 나무와 돌과 철을 하나로 조형한 것이며, 상호간 이질적인 재료와 재료가 하나로 만나지게 한 것이다. 이로써 의외의 조합과 함께 예기치 못한 조화를 통해 조형이 주는 감각적 쾌감의 수위를 확장 심화시켜놓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작가는 기성품의 도입에도 주저함이 없다. 식칼과 무쇠 솥과 같은 생활 오브제들이 자연 소재와 어우러지는 것인데, 처음부터 그런 형상이, 그런 조합이, 그런 조화가 있었던 양 친근하고 자연스럽다(개념적인 그리고 무미건조한 마르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는 그 결이 사뭇 혹은 많이 다른). 근작의 경우에는 소 쟁기와 가래를 도입한 설치작업이 있는데, 생활 오브제의 도입이 별도의 설치작업으로까지 확대 재생산된 경우로 볼 수가 있겠다. 어느 경우이건 평소 차이와 관계의 미학에 대한 이해와 함께(관계에 대한 인식은 차이에 대한 인식을 전제로 하는 것인 만큼, 그 둘은 서로 통한다), 재료의 물성과 본성을 읽어내는 감각적 혜안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작가는 심지어 생활 오브제마저 자연(제 2의 자연?)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작가의 조각은 자연의 본성에 충실한 조각, 자연에 흡사한 조각이 된다. 자연과 조각 사이에 위치하는(일상과 조각 사이에 위치하는 미니멀리즘과는 그 결이 사뭇 혹은 많이 다른) 조각이 된다. 그렇게 작가는 조각의 본성에 충실하다는 점에서 모더니스트이고, 인공의 손길을 최소화함으로써 자연의 본성이 드러나게 돕는다는 면에선 자연주의자이다. 모더니스트와 자연주의자, 자연주의적 모더니스트, 작가의 작가적 아이덴티티를 형성시켜준 조형형질 내지 유전자로 볼 수 있겠다. 그리고 작가는 근작에서 주목할 만한 자기변신을 꾀한다. 나무와 돌과 철 대신 아크릴을 소재로 취한 것이다. 단순히 소재가 변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으나, 여기에는 단순한 소재 변화 이상의 괄목할 만한 차이(그리고 이를 통한 자기 확장성)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나무와 돌과 철은 자연소재이고 반쯤 자연소재이다. 이에 반해 아크릴은 인공적인 소재다. 도시적인 소재며, 현대적인 소재다. 소재 변화는 단순한 소재 변화에 그치지 않는다. 소재가 변하면 감수성이 변하고 감각이 바뀐다(혹은 변화된 감수성과 감각이 요구된다). 하나가 변하면 다 변한다. 이로써 섣불리 자연으로부터 인공 쪽으로 턴한 것으로 단정할 수는 없으나, 적어도 이를 계기로 작가의 작업이 전기를 맞고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아크릴은 투명성과 투과성, 반영성과 왜곡성이 특징(그리고 본성)이다. 선입견으로 굳어진 눈에 들어오는 사이즈가 아니라면, 있는지 없는지조차 불분명해진다(존재의 불투명성). 여기에 작가의 작업에서처럼 일정하거나 상당한 두께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면 마치 조형이 투명한 덩어리 속에 들어있는 것 같은, 좀 극화해 말하자면 허공에 떠 있거나 던져진 것 같은 착각(착시)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있음과 없음의 경계가 불분명해진 탓에 마치 홀로그램에서처럼 손으로 덩어리 속 조형을 만지거나 붙잡을 수 있을 것만 같다. 게다가 그 조형은 미세하지만 움직이기조차 한다(옵티컬 효과?). 사실을 말하자면 조형 자체가 움직이는 건 아니지만,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그렇게 느낀다). 마치 관객의 시점에 반응하기라도 하듯 매번 다르게 보이는 것이며(특히 그러데이션 효과?), 때에 따라선 굴절(왜곡)돼 보이기조차 한다. 여기에 투명한 덩어리(차라리 표면)는 외부환경을 반영하기도 한다. 때로 작가는 아크릴과 함께 거울을 도입해 이런 반영적인 설질을 강조하고 극화하기도 한다. 그리고 아크릴 조형물은 그림자를 만든다. 조형과 그림자, 실재와 그림자, 실상과 허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조형의 가시영역을 확장시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며 시지각 효과는 왜 어떻게 일어나는가. 그리고 그 현상이며 효과는 언제 어떻게 극대화될 수가 있는가. 그건 어쩜 투명한 아크릴 덩어리 소재 고유의 성질에 부합하는 일이 될 것이고, 그 본성이 자기를 실현하도록 돕는 일이 될 것이고, 그 자체가 작가 고유의 조형적 성과가 될 것이다. 그게 뭔가. 빛이다. 투명도, 투과도, 반영도, 왜곡도, 그리고 조형과 그림자, 실재와 그림자, 그러므로 궁극에는 실상과 허상과의 경계가 모호해지거나 아예 사라지는 것이 모두 빛에 의해서이다. 빛이 투명한 아크릴 덩어리를 통과하면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 표면에서 일어나는 유희(감각적 유희?)다. 그러면 그 빛을 어떻게 붙잡고 표현할 것인가. 그 빛은 어떻게 실감될 수가 있는가. 바로 빛살을 조형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래서 작가는 빛살을 조형한다. 어쩜 빛의 물리적 형상(그리고 현상)을 빛살로 본 것이다. 그렇게 작가가 개발한 도구(일종의 조각도)로 빛살을 음각하는데, 표면(전면)에서 보면 돋을새김 한 양각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렇게 조각한 아크릴 판 두 개(때로 두 개 이상)를 붙여 하나로 만드는데, 마치 조형이 투명한 덩어리 속에 갇힌 것 같은, 좀 극화해 말하자면 마치 허공에 조각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렇게 작가는 대개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를 조형한다. 아무래도 빛 자체가 관념적 형상에 가깝고(빛의 존재 방식은 좀 특이한데, 감각적 대상이면서 마치 감각을 초월한 대상처럼 보인다), 이런 관념적 대상을 형상으로 옮기기에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형태가 어울린다고 본 것이다. 게다가 전통미학에서 기하학적 형태는 수학으로 간주되었고, 여기에 관념적 대상의 표상으로 여겨졌다(예컨대 신성기하학). 그렇게 작가는 격자패턴의 무늬를 비롯한 이러저런 기하학적 형태를 조형하는데, 특히 원 형상을 조형할 때 빛의 물리적 현상이며 표상형식이 극대화된다. 대개는 중심성이 강한 구도(아님 구조?)와 함께, 원을 그리면서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빛살 현상을 표현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작가는 색채를 도입해 조형에 변화를 꾀한다. 미묘한 빛살과 부분적으로 도입한 현란한 원색과의 대비가 관념과 물질, 질료적 대상과 관념적 대상이 하나로 합체된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아마도 빛의 관념적 대상을 감각적이고 질료적인 대상으로 옮겨(혹은 해석해) 그 실체를 실감할 수 있도록 한 것일 터이다(어쩜 색 자체가 이미 빛의 물리적 현상 혹은 실체일 수 있다). 여기에 작가의 조각은 평면과 입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그 둘이 하나로 합치되는 제3의 조형 가능성을 예시해주고 있는 점도 주목해볼 일이다. 그런가하면 앞서 작가의 조각의 특징은 관계의 미학 곧 상호간 이질적인 재료들을 하나의 조형으로 합치해놓고 있는 것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런 특징은 근작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자연목이나 철물 그리고 고가구와 같은 자연소재로 좌대를 대체하거나, 때로 석재로 프레임을 대신한 것이다. 아크릴 조형으로 나타난 인공물이 좌대를 대신한 자연물과 어우러지는, 그렇게 인공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한편, 과거와 현대가 하나로 얽히는 시간여행을 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일종의 내면풍경 혹은 추상풍경을 열어놓는다.

  • 기대용 개인전-생의 근원
    G&J갤러리전시
    기대용 개인전-생의 근원
    기간
    2019-07-31 ~ 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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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대용 작가에게 있어서 그림은 기대용의 삶, 그 자체이다. 그가 겪어왔을 삶의 투쟁, 혹은 삶에 대한 자신의 열정들이 들어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작품의 대부분은 이라는 이름을 갖는다. 작품에는 “사(死)를 생(生)으로 바꾸는 생명 근원의 역사, 기적을 일으키는 개인적 경험들”이 깊숙이 녹아있다. 그의 작품은 자신의 주체가 강하게 관여되어 있는, 자신이 가징 잘 드러나 있는 자화상이라고 할 수 있다. 중 략....................... 그에게 작업은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가장 좋아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작품은 무언가를 지시하기 보다는 그림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다.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문지르고 밀어내는 행위들은 자유롭지 못한 신체 때문에 여러 번 천천히 반복한다. 반복하며 만들어내는 우연적인 흔적들은 작가가 사용한 모든 색들이 서로 경계를 지으며 하나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그에게 작업은 가장 좋아하는 색들이 작품 속에 그대로 구현되며 자신의 신체적 한계를 잊을 수 있는 행위들로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신체를 통해 흔적을 남기는 그의 작품은 죽어있는 그림에 영혼을 불어넣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자신의 살을 통해 물감을 밀어내고 문지르는 행위들은 자신의 영혼이 그대로 투영되는 자화상이 된다. 기존의 자화상이 인물을 그대로 재현한다면, 기대용 작가의 자화상에는 행위가 보여주는 우연, 독자성을 유지하며 스펙트럼을 만들어 내는 색들이 실린다. 의식적인 손의 움직임에 따라 짓이겨 뭉개지고 뒤엉키는 무의식적인 흔적들에는 작품에 대한 열정이 들어있다. 작품은 우연성과 미적인 효과들로 발현된,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기대용 작가만의 자화상이 된다. 2016년, 주요 기획전시에서 평론글- 양 다 솔 (미학)

대관 안내

G&J 갤러리는 남도작가를 후원하고 다양한 남도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서 대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대관료 안내
전남·광주 작가
일주일1,000,000원
전남·광주 작가 작가
일주일3,000,000원
대관 절차
  1. STEP 1공고

    정기대관 : 공고에 명시된 대관 신청서를 접수 기간 내에 신청 받습니다.

    수시대관 : 정기대관 신청이후 잔여 일정 발생 시 수시로 신청을 받습니다.

  2. STEP 2신청서
    접수

    신청 서식을 다운로드하여 작성해주세요.

    • - 붙임서식 : 대관허가신청서 1부, 전시계획서 1부, 작가 이력서 1부
    • - 전남ㆍ광주지역작가 입증서류 1부, 포트폴리오 접수 원칙
    • - 방문 및 우편접수
  3. STEP 3대관 심사

    대관의 가/부 심사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대관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합니다.

  4. STEP 4심사 통보

    대관의 승인 가/부 통보는 심사 완료 후 홈페이지에 기재 됩니다.

  5. STEP 5대관료
    납부

    대관 예정일이 개시되기 30일 이전까지 대관료를 납부해야 합니다.

    입금계좌:
    입금계좌: 광주은행 650-107-001220
    예금주:
    (재)전남문화예술재단(남도예술)
  6. STEP 6대관허가
    /전시

    대관 허가 및 전시를 진행합니다.

대관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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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접수기간을 기다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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