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Artist / 이 달의 작가

그림 그리다가 생각나면 글을 쓰곤 합니다

고선주(광남일보 문화부장·월간 ‘전라도인’ 편집장)
부제

주민들이 흙발로 전시장에 출입…‘문화사랑방’ 역할
화업 42년만에 ‘시와 그림의 만남’ 출간…200쪽 분량
출판기념 개인展 10월5일까지…오픈식 때 배포 예정

그림 그리다가 생각나면 글을 쓰곤 합니다-대표 이미지
미술관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광옥 관장

‘전라도 말 자랑대회에 나갔다/술보 남편 숭보기였다
왕초가 질로 존상 받을 줄 꿈에도 몰랐다/기분 좋다
사람들이 남편 덕으로 상탔다고 한다/그런다고 해야지
남편은 날마다 술마시고 잠만 자고/남편이 할멈보다 술이 좋다고 해서
왕초 움서 악을 썼다/너는 남편도 아니고 좃도 아니다.’

이는 ‘산내리 청춘학당’ 한글교육 프로그램에 1년 동안 참가했던 청춘학당의 할머니들이 펴낸 두번째 합동시집에 실린 작품이다.

이처럼 문화에 ‘문’(文)자도 모르고 사는 주민들에게 문화가 공기만큼이나 소중하고 재미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은 미술관 덕분이었다.

이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산내리 소재 잠월미술관의 이야기다.

김광옥 관장(한국화가)이 사비를 들여 지난 2006년 문을 연 잠월미술관은 당시 함평군 이석형 군수(현 산림조합중앙회 회장)의 설득이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군수와 김 관장은 전남대 동기동창이자 친구간이었다. 이 군수의 제안을 김 관장이 받아들이면서 현재의 자리에 미술관이 들어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김 관장에게 함평은 연고가 없는 지역이다.

그는 전남 장흥 출생이기 때문이다.

낯선 함평에 미술관을 열고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 13년의 시간들은 김 관장에게 녹록지 않았다.

"처음에 화순에 건립하기 위해 부지 매입과 설계도면을 마무리한 상황에서 이석형 군수의 제안으로 갑작스럽게 방향을 틀어 함평으로 바꾸게 됐습니다.

미술관 문을 열 초창기에는 이런 깡촌에 미술관을 짓는 게 조금 그랬어요. 그런대 막상 미술관을 지어놓고 난 뒤부터는 시골에 문화봉사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이죠."

김 관장의 미술관에 대한 복잡한 속내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산내리에서 미술관을 시작하기로 한 뒤 ‘산내리 마을’ 자체를 전시로 보여줄 생각을 가지고 임했다고 한다.

그래서 첫 전시가 ‘산내리전’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이런 흐름이 훗날 잠월미술관이 산내리와 끈끈한 연계를 맺어간 토대가 된 것이다.

미술관은 대지 960평, 건평 100평, 텃밭 10평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인건비 등이 만만치 않아 우수한 큐레이터들을 많이 채용하지 못한 점을 늘 아쉬움으로 꼽는다.

더욱이 이런 힘겨운 관장 역할 외에 교육자와 창작자로서의 삶 모두를 감내해야 했다.

미술관은 마을 사랑방으로서 자리를 잡았고, 글자를 모르던 할머니들에게는 ‘산내리 청춘학당’을 운영해 글자를 깨쳐줬을 뿐만 아니라 어르신들을 시인 등단까지 뒷받침했다.

어르신들은 시집만도 2권이나 펴낸 어엿한 작가가 됐다. 모두 김 관장의 열정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김광옥 작가 - 비가 올 때면

김 관장과 인터뷰를 진행하는 동안에도 마을 주민들은 스스럼없이 미술관을 드나들었다. 70대 중반의 마을주민이 들어와 ‘모종을 언제 할 것인가’를 묻는다.

미술관에는 10평 규모의 텃밭이 있다. 거기에 심을 모종을 가져온 것이다. 배추 농사를 지어 150포기 정도를 김장해 전시오픈식 때 나눠 먹는다고 한다.

그런데 김 관장만 정작 산내리에서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더군다나 미술관 운영이 버거워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직면한 상황도 찾아왔지만 그는 그럴수록 예술에 관한 생각들과 시 또는 단상들을 정리, 마음을 다잡으면서 현재에 이르렀다는 반응이다.

지난 8월31일 오후 단행본 출간을 앞두고 만난 그는 작품집에 대해 먼저 언급했다.

그가 펴낼 작품집은 시와 그림이 만나는 형식으로 표제는 ‘현동 화중유시’(玄童 畵中有詩)다.

그동안 도록은 펴냈지만 이번 책은 그의 첫 단행본으로 화업 42년만에 펴내는 것이다.

표제인 ‘현동’은 자신의 호이고, ‘화중유시’는 중국 송나라 소동파의 글이다.

소동파가 남종화의 시조인 왕유의 작품을 접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서 한 말이라고 전해진다. ‘그림을 보면 시가 떠오르고,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른다’(畵中有詩 詩中有畵)에서 따온 것이다.

‘현동 화중유시’라는 타이틀로 열리는 출판기념 개인 전시는 지난 8월1일 개막해 오는 10월5일까지 열린다.

2호부터 200호까지 30여점을 출품해 선보이고 있다.

오픈식은 9월21일 오후 3시로 이날 그는 단행본을 배포할 계획이다.

그의 단행본에는 전시에서 선보이는 이번 작품들과 그가 그동안 작업해온 작품들을 엄선, 시나 단상을 붙인 형태로 수록된다.

그는 그때 그때마다 그림을 보며 생각났던 글들을 정리해 펴냈게 됐다는 설명이다. 단행본 출간의 첫 시발은 ‘산내리 아침’이라는 글을 작성해 한 매체에 발표하면서다.

그의 단행본은 200쪽 분량으로 올 칼라로 서울 신영프린팅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그림 100편과 글 100편이 수록된다.

"어머니가 좋아해 그림을 줄곧 그려왔지만 글은 그림을 그리다가 생각나면 쓰곤 했습니다. 그냥 느낌이 오면 쓴다고 보시면 됩니다."

김광옥 작가 - 한가한 날

어렸을 때부터 만화를 많이 보게 돼 그림을 그렸지만 어머니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더욱 애착을 가지고 하게 됐다는 후문이다.

또 자신이 농촌에서 태어난 만큼 그 누구보다 농촌의 현실을 잘 이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스스로 주민들에 동화돼 생활해간다.

그래서 주민들이 흙발로 전시장에 들어와 전시를 볼 수 있도록 한 것도 김 관장이 자신이었다.

문화를 향유하는데 문턱을 둬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광옥 관장은 이미 문예지로 등단을 한 이력도 있지만 이 책이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까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이 책을 펴내도 될까 걱정이 앞선다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그래서 거창함보다는 소소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면서 전시도 어디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시골에서의 생활이 그대로 일상이 되고 있는 만큼 이런 감성들을 투영하려고 노력한 셈이다.

잠월미술관은 근래 국제교류에 나서고 있다.

두차례 라오스와 한차례 베트남에 다녀왔다.

그 곳에서 스케치 활동과 미술용품 기증, 현지 미술실태 조사활동 등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내년에는 베트남을 다시 방문할 계획이다.

김광옥 관장은 아산 조방원과 목정 방의걸, 계산 장찬홍 선생의 문하에서 그림을 배웠고, 전남대에서 미술공부를 했다.

화가이자 미술관 관장 등으로 알려져 있지만 문예지 ‘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한 문인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광주 수완고 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2020년 8월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다. 퇴직 이후 미술관 카페도 생각하고 있다.

그는 광주 집으로 퇴근하면 편하겠지만 매일 미술관으로 출퇴근하는 불편함을 마다하지 않고 작업과 산내리 문화지킴이, 그리고 후학양성에 힘을 쏟고 있다.

공유하기

빠른 메뉴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