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달라 붙어있는 한지 두루말이 토막들은 하나의 물결을 이루어 자연의 높고 낮음의 기운과 흐름을 담아내어 동양철학과 정신의 재해석을 통한 구성이 돋보인다. 캔버스라는 평면적 한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작품은 이미지 확장의 시각적인 효과로 일정한 주변공간을 장악하고 있어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은 칼라나 형상이 결코 자극적이거나 물리적인 어떠한 작동도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정공간을 장악하는 시각적 효과는 아마도 그의 작품에 도두라진 한지의 흐름이 주변 공간까지 확장으로 연결되어 지는 동적인 효과일 것이라고 본다. 이는 그가 다년간 모험과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만학도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도전
서정민의 학력과 회화수업의 이력은 흥미롭다고 말하기 보다는 어쩌면 그가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 시간의 흔적과 열정의 시간이었음을 대변해 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는 장흥 시골의 가난한 집의 출생으로 장흥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림을 계속 그리고 싶었으나 그 꿈을 가슴 한구석에 담아두고 군 입대와 전역이후 1985년(24세) 여수 한전에서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다.
그는 직장생활 중에 틈틈이 그림을 그렸으나 예술론과 현대회화에 대한 이론과 형식미의 한계에 갑갑함의 이르러 해소를 위한 각별한 각오를 해야만 했었다. 결국 흡족한 그림을 그리고 자는 참을 수 없는 목마름에 만학도의 길을 선택하게 되고 동시에 오랜 시간 그려왔던 아카데믹 화풍의 유화를 접고 드로잉만을 수년간 지속하였다.
그는 다니던 직장을 야간근무로 전환하고 조선대학교 미술대학에 편입하여 졸업을 하였다. 그러니까 이른 아침에는 광주로 올라와 미술수업을 하고 오후는 여수에 내려가 직장에서 야간근무를 해야 했다. 수면은 버스 안에서 취하는 대학생활을 수년간 했다는 것은 건강이 허락했겠지만 열정과 용기, 의지가 강하지 않았다면 견디기 어려운 시간일 것이다. 그는 대학에서 충실하게 회화에 대한 이론과 실기의 기본기를 연마하면서 아카데믹한 회화의 개념에서부터 현대미술까지를 접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 경기대학교 대학원 미술과에 입학하여 여수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니면서 학업을 마치게 된다.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고충의 시간들로 소수의 단어로 표현하기엔 부족함이 많을 것이다. 대학원 과정에서는 서울(중앙)지역 미술인과의 인맥 폭을 넓히는 기회를 스스로 마련한 것이다. 그와 더불어 현대미술이라는 높은 산을 넘는 자극과 도전을 할 수 있는 적극적인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이시기 한지라는 재료를 새롭게 발견하게 된다. 이렇게 만학도 서정민의 예술과 자기미학을 향한 열정과 도전의 시작되었다.
한지를 통한 ‘입체회화’ 창조
그가 회화를 멈추고 다시 시작한 지점은 한지로 자기미학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의미하는 각별함을 강조도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물론 그의 진정한 예술(미학의 아우라)의 출발점은 풍성하고 고즈넉한 고향인 장흥 바닷가에서 출발되어 진다. 이러한 남도적 투박한 정서와 서정미학은 오늘의 한지회화에 고스란하게 묻어나고 있다.
이러한 그는 켄버스에 오일페인팅의 양식을 과감히 버리고 한지라는 재료를 선택함에는 대학과 대학원과정을 통하여 취득한 예술개념의 확장과 현대미술이라는 화두의 집요한 탐구정신 이었으리라. 특히 직장(한전)을 사직하고 파주로 작업실을 이전하면서 더욱 심화된 독창적인 자기미학의 형식을 창조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보여 진다.
그는 파주의 시대를 열면서 현대미술에 대한 담론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다. 회화의 기본 요소인 점과 선, 그리고 선의 움직임으로 면에 대한 탐구와 공간에 대한 개념의 확장은? 그리고 동양적 개념과 의미, 표현방식? 서구적 개념과의 차이는 어떠한가? 자기미학으로의 표현을 위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면서 예술가로 치열한 탐구정신을 훈련하였다고 본다.
그는 우연치 않게 서예를 하는 지인의 작업실 방문한다. 지인의 작업실 구석에 수북하게 쌓여있는 서예습작 파지들을 유심히 관찰을 하게 된다. 버려진 한지들은 오류와 잘못된 낙오의 실체들은 당. 송시대, 그리고 조선시대를 넘어오면서 동양의 정신과 선조의 삶의 교훈이 담겨져 있는 흔적이 아니던가? 이들은 우리의 오랜 전통이자 무진한 우리의 역사를 담지해내고 있지 않던가? 그 한지에 담긴 정신은 노자의 자연주의 사상으로 먹과 필을 사용하여 문자로 압축 재구성된 것들인 것이다.
그는 이러한 파지들을 끌어 모아 작업실로 가지고 와서 한지의 특성과 성질, 물과 먹의 관계, 영구보존관계 등에 관한 연구와 함께 파지를 쌓아 단면을 잘라보고 측면을 잘라보는 실험을 반복하고 또 반복하게 된다. 한지라는 재료의 영구성과 조형실험이다. 즉, 그는 낙오된 한지를 새로운 오브제, 생명의 미학화, 이질적이거나 낯설지 않은 개념으로 재창조하여 완성하였다. 이렇게 그는 본격적인 한지 작업에 몰두한다.
파지 한지의 두루말이 단면에 글씨흔적이 나타나게 날카로운 면도날로 크기가 다른 한지 봉을 자르고 캔버스에 접착제로 쌓아 올리는 작업과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위해 수많은 실험을 통해 오늘의 작품을 얻게 이르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효과적으로 하기위해 많은 공구를 구입하고 또한 그가 직접 공구를 제작하기도 하고 더러는 공작소에 설계하여 주문하여 사용하기도 하면서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한마디로 그의 작업실에서의 그 과정은 예술과 자기미학의 어법을 찾아가는 전쟁터로 자신의 삶을 모두 투신하게 되었다.
한지의 단면에는 먹 글씨의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조형적으로 완성도와 밀도를 높여주었고 글의 내용은 읽을 수 없지만 상징인 의미 함축으로 동양정신과 삶의 교훈이 재구성되어 새로운 ‘입체회화’로의 양식을 창조하게 이르렀다. 그리고 서정성과 함께 순백과 여백의 미학으로 시간과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그가 재료를 다루는 성숙함과 세련된 조형감각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결과일 것이다.
음과 양, 오행에 던지는 화두
그의 작품은 한지의 자그마한 두루말이 하나하나의 흔적들이 캔버스에 가로와 세로 흐름의 결을 이루고 있다. 그가 직접 곡물을 연구하여 만들어낸 본드를 사용하여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아래에서 위로 위에서 아래로 축조하듯 쌓아가면서 이미지의 흔적을 남기는 방식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수차례의 드로잉으로 계산된 캔버스에 높고 낮음의 한지의 형상미를 갖추게 된다.
캔버스 위에 한지들은 크고 작은 둥근 원, 굵고 가는 선, 크고 작은 면과 자연을 함축하는 이미지로 작품 명제 또한 ‘함성’, ‘무심’ ‘선들의 여행’, ‘도(道)’, ‘와(瓦)’ 등으로 추상적이고 비형상적 명제에서 느낄 수 있듯 동양의 자연주의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동양의 ‘음(陰)’과 ‘양(陽)’ 그리고 오행(水. 火. 木. 金. 土)의 자연의 기운을 담아내고 자는 것이다. 자연의 함성, 바람의 흐름, 자연의 이치, 인간의 도리로 추상적이고 비정형적 주제이다.
그의 작품은 모두 비슷한 공통적인 구조와 마티에르가 있다. 그러나 작품마다 주제는 소리, 바람, 해와 달, 자연의 이치들로 각자 다름이 있으면서도 전반적인 작품에 있어서는 하나의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자연이라는 대 주제에 대하여서는 하나의 심상의 운율로 통일되어 읽어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작품마다 다른 명제와 이미지의 차이점이 있더라도 캔버스 화면에 한지는 자연의 기운이라는 흐름을 담아내고 자는 자기 미학어법의 동일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캔버스에 달라 붙어있는 한지 두루말이 토막들은 하나의 물결을 이루어 자연의 높고 낮음의 기운과 흐름을 담아내어 동양철학과 정신의 재해석을 통한 구성이 돋보인다. 캔버스라는 평면적 한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완성된 작품은 이미지 확장의 시각적인 효과로 일정한 주변공간을 장악하고 있어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작품은 칼라나 형상이 결코 자극적이거나 물리적인 어떠한 작동도 없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정공간을 장악하는 시각적 효과는 아마도 그의 작품에 도두라진 한지의 흐름이 주변 공간까지 확장으로 연결되어 지는 동적인 효과일 것이라고 본다. 이는 그가 다년간 모험과 실험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지구촌은 천박한 자본에 의한 문명의 발전논리, 끊임없는 인간의 탐욕 등으로 병들어가고 있다. 현 시점에 지구의 대 자연은 인류에 경고를 보내고 있음을 서정민을 잘 알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 그는 인류의 자본주의 경제발전 논리에서 동양정신과 삶의 방식으로 화두를 우리사회에 던지고 있다고도 보여 진다.
서정민(1961년 장흥생)
조선대학교 미술대학 및 경기대 대학원 졸업
여수한전(1985 - 2007)
개인전 26회(광주, 서울, 뉴욕, 이스탄불, 바젤, 동경 등)
초대전 2016, 인도-한국현대미술교류전(서울, 발리)
2015, 오페라갤러리(서울)
2013,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전(이탈리아) 외 60여회
수상 2016 올해의 미술상(한국미협 고양지부) / 2014 장리석 상(한국미술협회)
2012 골든어웨드상(오스텐미술관 특별전) / 스코페비엔날레최고상(종이부문)
외 다수
작품소장처 서울시립미술관, 대만시립미술관, 한국전력공사, 트윈타워(미국), 동아일보, 종이나라박물관 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