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오면 동백꽃의 깊고 넓은 의미에 심취한 동백꽃의 화가 강종렬을 만날 수 있다. 아니, 강종렬의 겨울 동백꽃을 통해 단단히 붙들어주고 끌어안는 삶의 따뜻한 정서는 물론, 세계로 열린 한국의 깊은 조형법을 만날 수 있다
동백꽃이 상징하는 의미는 깊고 넓다.
계절이 오면 누구보다 가장 먼저 몸을 열어 안쪽의 뜨거운 열기를 내뿜어 봄을 열어가는 동백, 봄은 동백이 열어젖힌 몸짓을 통해 시작된다.
겨우내 차가운 바닷바람의 시련의 견뎌내고 2월의 따스한 햇살 아래 봉오리를 여는 봄의 화신(花神)인 생태를 보더라도 동백은 꿈과 희망의 심볼로 자리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빨강 이미지는 정열의 표상이고 부의 표상이기도 하다.
동백꽃의 매력은 새삼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가장 깨끗하고 싱그러울 때 미련없이 툭 제 자리를 놓아버리고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보면 분명 말 그대로 하늘에서도 피고 땅에서도 피는 꽃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이형기의 <낙화> 부분 -
동백의 이런 매력은 우리 삶의 이해와 깊숙이 닿아있다.
진초록의 잎성과 빨간 꽃잎, 그리고 샛노란 꽃술의 보색관계는 결코 품위있는 색감과는 거리가 멀고 어찌보면 가장 촌스러운 보색관계가 아닌가. 그럼에도 강종렬의 동백꽃은 이러한 촌스러움을 순수의 본질로 전환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기에 다시 화가의 정열적인 감정체험을 보태어 원색적인 보색관계를 가장 품위 있고 가치 있는 조형미로 거듭나게 한 것도 예사롭지 않다.
그의 동백은 분명 살아 숨 쉬고 있다.
살아있는 그림은 쉽게 유행에 기대지 않고 시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미학을 제시해주는 그림이다. 정서적 이유를 바탕으로 정직하고 솔직하게 본질을 짚어낸 미적체험으로 질주할 수 있을 때 그림은 건강미를 얻게 되고 향기가 되어 영혼의 울림을 주게 된다.
진솔한 미적 체험을 갖지 못한 채 말초적인 감각에 의존한 그림이라면 미적 정서를 둔화시키고 동적 삶의 체험을 둔화시킬 뿐이다.
그의 그림은 우선 말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고 힘이 있다. 무엇을 말해야 하고 어떻게 말해야 할 것인가를 분명히 터득하고 있는, 대상의 핵심에 다가들어 거기에 생명의 순간들을 새겨 넣고 있다.
강종렬의 동백은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린 가시적인 동백이 아니다.
그냥 느낀 감정이 아니라 생의 이해와 맞닿아 있는 의미 있는 감정체험의 꽃이며, 한겨울의 해풍과 추위를 견뎌낸 아픈 시간의 의미가 담긴 꽃이며, 순결하고 지조 있는 설화說話 속의 꽃이면서, 가장 아름다울 때 떠날 줄을 아는 멋스런 꽃이다.
구상의 중심에서 약간 비껴선 자리에서 추상적 이미지를 가미한, 초월과 신비감이 융숭 깊게 내장되어 있는 강종렬의 동백꽃, 붓과 나이프로 툭툭 던지듯 터치하는 기법으로 그려낸 동백의 차가운 외적 상황을 펼쳐두고 그 가운데 툭툭 던져놓고 있는 가슴 따뜻한 꽃의 숨결, 지천에 떨어진 꽃 송이송이에 더 의미를 두고 있는 이유까지 알 것 같다. 뿐만 아니라 그가 동백꽃을 통해 조형적으로 간파한 은근하고 끈기 있는 한국인의 정서는 보는 사람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몰입되지 않으면 결코 발견할 수 없는 동백꽃의 의미체험들이다.
대상을 그냥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어떤 현상과 연결시켜 바라보려는 힘, 대상을 새롭게 인식하고 재해석하려는 동화(assimilation)와 투사(projection)의 힘에 의해 동백을 바라본다.
그의 그림은 한결같이 낯익은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상상력과 사유의 발현, 미적 새로움에 대한 노마드(nomad)적 정신이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동박새 울음소리 맑게 우는 그의 그림 속에 들면 떠나버린 님의 빈자리에 홀연히 피어나는 꽃, 경건한 고요가 몸속까지 밀어올린 고독도 혼자 견뎌내고 있는 사랑의 의미도 알 것 같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모든 사물은 자신만의 존재 이유와 존재방식이 있다
그림의 대상은 어떤 것을 위한 오브제로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존재 이유가 되어야 한다.
소위 그림에서의 아름다움이란 형태적 아름다움도 그렇지만 그보다 더 화가가 발견한 새로운 의미와 함께 창조한 조형적 공간을 통해서 전율을 갖게 된다. 즉, 낯선 아름다움이 있어 그림은 감동으로 물결지게 하려면 어떤 풍경을 바라보고 그 풍경을 통해서 새로운 조형적 공간을 유츄해 내는 직관에 의해 가능해진다.
그의 작업은 이러한 의미 체험을 바탕으로 대작을 선보이는 점도 놓칠 수 없다. 대작이 아니면 동백의 야생호흡력과 원형적 심상을 도저히 풀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작품을 대하면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며 전율이 인다. 그와 함께 한국적 전통정서와 맞닿은 장독대를 배경으로 설경의 동백과 흰 동백 등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정서체험을 만나게 한다.
강종렬의 동백 그림은 그냥 단순한 미적 오브제가 아니라, 몰입하여 바라본 직관에 의해 유추해낸 동백이다. 바로 동백꽃이 지닌 순결한 조형미를 불러내려는 강종렬의 진정한 대화법이다.
그의 동백이 지닌 원형적 호흡력을 표현하기 위한 대화법에는 엄청난 양의 붓질과 물감이 동참하고 있다. 그에게 캔버스는 신명이 지펴나는 공간이자 원형심상을 풀어내는 소통의 장이다. 그래서 구상이면서 비구상인 동백은 대상이면서 시간이고, 시간이면서 공간으로 자리한다.
붓질이 살아야 그림은 생명력을 잃지 않는다.
남들이 찾아내지 못한 아름다움을 찾는다는 것, 또는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쉽지 않지만 늘 의식이 살아 움직이고 있어야 누구나 볼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고 그것이 캔버스에 옮기는 힘이 된다. 뇌리와 손끝 사이로 흐르는 감정들을 붙잡아 둘 수 있어 좋다.
- 작업노트에서
‘좋은 작품은 시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의 회화의 정신이다.
반복적인 대상인식을 통해 만들어진 깊은 사유와 수행의 결과물로 툭툭 찍듯 거칠게 펼쳐내는 작업도 알고 보면 그의 이러한 치열한 정신적 수양이 함축되어 대중의 소통과 공감을 이끌어낸다.
여수에 오면 동백꽃의 깊고 넓은 의미에 심취한 동백꽃의 화가 강종렬을 만날 수 있다. 아니, 강종렬의 겨울 동백꽃을 통해 단단히 붙들어주고 끌어안는 삶의 따뜻한 정서는 물론, 세계로 열린 한국의 깊은 조형법을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