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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 이 달의 작가

시 쓰는 화가 서현호의 곡성 작업실을 찾다

고선주(광남일보 문화부장·월간 전라도인 편집장)
부제

투트랙으로 ‘피플 드로잉’과 ‘춤’ 내세워 붓칠
인간애 바탕 글·그림 공존 ‘공동체 의식’ 구축
작업 스토리 완결 여부 주목…포장미술 구현도

시 쓰는 화가 서현호의 곡성 작업실을 찾다-대표 이미지
곡성 작업실

날씨가 오락가락하다. 비가 오려나 보다. 이제 일상이 된 미세먼지와 뜨거운 대지를 씻겨주고 식혀줄 비가 내린다.
전남 곡성에 진입, 읍내 새터길(옛 신기리)에 접어들었을 때는 초여름의 장맛비가 쏟어졌다.
그의 작업실을 방문하던 날인 지난 6월 22일 오후 폭우와 직면했다.
‘잘 대비하라’는 무언의 경고 같았다.
날씨는 그랬지만 이 시골마을에는 회화세계를 분명하게 일궈가는 화가가 한 명 거주하고 있다. ‘집돌이’같은 화가다. 그는 바로 화가 서현호 씨다.
그와의 인연은 ‘시 쓰는 화가’라는 이력 때문이다.
사실 그림에 앞서 시집을 펴낸 어엿한 시인이다 보니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시와 사람에서 ‘시인과 石手’를 이미 펴낸 바 있다.
이는 글이 되는 화가이자 문학적 사유가 가능한 화가라는 것을 뒷받침한다.
글과 그림이 공존하는 그는 이런 근거로 인해 때문에 ‘피플 드로잉’이나 ‘포장 미술’의 영역에까지 손을 뻗칠 수 있었는지 모른다.
물론 그 이전에 ‘스마트폰 그림’으로 관심을 받았다.
스마트폰으로 하는 작업이야말로 남들이 하지 않은, 혹은 남들이 정통이 아니라고 기피할 수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넘나들며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
그의 스마트폰 그림을 접한 적이 있다. ‘유기농 백수의 그림일기’라는 타이틀 아래 지난 2013년부터 3년간 지속됐다.
‘희로애락’을 전시 콘셉트로 내세워 진행해온 그만의 영역으로, 작품이 자그마치 1000점이 저장돼 있다.
캔버스로만 작업하는 작가들 입장에서는 조금 낯설어 보일 수 있기는 하다.
하지만 캔버스에서의 색감과 표정, 포즈 등을 모두 디테일하게 되살리고 있어 하나 이상할 게 없어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그의 스마트폰 속 인물들 역시 그가 추구하는 ‘표현주의’의 범주 안에 놓여있다는 생각이다.

대인시장 전시 모습

이처럼 그의 화폭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표현주의 계열의 인물 작업으로 대별돼 왔다.
피플 드로잉은 어쩌면 일상의 인물들을 화폭으로 끌어들인데 반해 포장 미술은 이 피플 드로잉의 인물 그림을 조각보로 이어 특정 공간을 감싸려는 시도로 표출되고 있다.
그날 그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도 피플 드로잉의 작업은 계속되고 있었다.
작업실을 열고 들어가자 그동안 작업해 쌓아놓은 피플 드로잉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눈에 보이는 것만 500점으로, 그 쌓이는 두께만큼 그의 작업 이력이 더해졌다. 이 피플 드로잉은 3년 전부터 그가 주력해온 것이다.
피플 드로잉이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된 것은 광주에서는 보기 드물게 지난 2017년 10월 14일부터 31일까지 광주 대인시장에서 선보이면서다.
그해 5개월 동안 작업을 펼친 끝에 시장 사람들을 포함해 240명의 얼굴 작품들을 모두 시장 구조물 천장에 매달았다.
그야말로 각양각색의 인물들이었다.
재래시장은 다양한 인물과 삶의 형태가 존재하는 곳이다.
작가의 피플 드로잉 또한 다양한 삶을 담아냈다.

작업실에 쌓여져 있는 피플 드로잉

최근에는 ‘곡성 세계장미축제’에 맞춰 곡성군 지원으로 ‘5월엔 만인의 얼굴이 꽃이다’( People Drawing 500)라는 타이틀로 ‘피플 드로잉’ 작품 500점을 선보여 호응을 얻었다.
그의 피플 드로잉 작품은 800점을 돌파했다. 1000점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1200점을 채워야 할지도 모른다.
2020년 5·18광주민중항쟁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일명 ‘포장 미술’을 실현시킬 복안을 갖고 있다.
옛 전남도청 본관을 자신이 전개한 피플 드로잉 작품으로 감싸는 기획을 구체화시키고 있다.
피플 드로잉을 하나하나 조각보처럼 이으면 600평이 넘고, 거기에 필요한 작품은 1000점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조각보로 이어 옛 전남도청 본관 건물을 포장하듯 덮겠다는 것이다. 설계 스케치까지 마무리 지은 상황이다.
작가는 더 많이 필요할 경우 1200점까지 작업할 용의를 가지고 있다.
올해 오월 광주의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518점을 상징공간에서 선보이려 했으나 무산된 바 있다.
작가는 이를 바탕으로 내년 대규모 설치미술을 의미하는 ‘포장 미술’을 구현할 복안이다.
포장을 대지미술로 발전시킨 장본인은 불가리아 출신 미국 대지미술 포장 미술가 크리스토 자바 체프(Christo-Javacheff)다.
필자를 만난 작가는 인터뷰에서 크리스토 자바 체프를 언급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이런 일련의 움직임은 5·18광주민중항쟁 정신을 상기하면서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이 꿈틀대고 있어서다.
그는 투 트랙의 작업을 펼치고 있다.
하나는 앞서 언급한 피플 드로잉에 관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평면회화를 구현하고 있는 캔버스 작업이다.
피플 드로잉은 말 그대로 드로잉 작업을 말하고, 캔버스 작업은 드로잉을 제외한 회화 작업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는 캔버스 작업을 통해 춤에 관한 것을 주제로 형상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표현주의 양식으로 원초적이고 원시적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감성 작업에 매달리고 있어요. 저와 세계가 만나는 것이구요. 선험적으로 만나는 포지션이 댄스인데 예전에는 춤을 많이 그렸습니다. 춤은 또 하나의 언어라고 봅니다. 인간이 뽑을 수 있는 에너지를 조망하고자 한 것이죠. 한(恨)도, 무용 동작도 아니지만 저도 모르게 내면의 울림이 표정으로 일어나는 동작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가 투 트랙으로 내세우고 있는 핵심은 ‘피플 드로잉’과 ‘춤’이다.
모두 표현주의 양식에서 탈피하지 못하지만 엄밀한 차이를 보인다.
피플 드로잉은 실존 인물 드로잉인데 반해 춤은 작가적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파랑새는 있다 시리즈

그러나 작가는 이 두 가지를 별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둘의 접점이 있다고 본다.
인간애를 바탕으로 한 ‘공동체 의식’이 그것이다. 춤은 축제가 떠오른다고 했다. 공동체적 문화를 고양시킨다는 설명을 잊지 않았다.
자본주의의 암울함이 있으나 희망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파랑새는 있다’라는 것이다.
이 작품에도 표정으로 일어나는 동작이나 공동체 의식을 함유하고 있는, 다양한 인간 군상이 등장한다, 모두 발가벗은 채 말이다. 인간 군상이니, 동작이니, 신체니 하는 것들이 서로 연계돼 있다.
그의 작업실을 찾았을 때 400호 크기의 ‘파랑새는 있다’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을 대면할 수 있었다.
작가는 이 작품의 마무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파랑새는 있다’ 역시 이런 해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춤은 무목적적 동작으로 걸음과는 다릅니다. 무의식적 동작에서 나오는 것인데 서로 각자 다른 동작이나 뭔가 모를 일체감과 원초적 에너지가 종합해 나온 축제와 연계되죠. ‘파랑새는 있다’에는 등장인물들이 모두 벗고 나옵니다. 나체로 말이죠.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라 세계에 부딪히는데 제약이 없다고 봐요. 누드는 나체와는 달라요. 누드는 옷을 벗었지만 보여주려는 것이 목적이니까요."
서현호 작가는 작업실에 박혀 지낸다.
몇 걸음만 나가면 들판이다.
한적한 시골에 있지만 그의 몸은 언제나 작업실에서 붓을 든다.
붓을 들면 밖에 나가는 법을 잊은 듯하다.
그는 투 트랙의 작업을 진행하면서 올 하반기 박사학위 취득까지 앞두고 있다.
그가 얼마만큼 노력하며 작업하는 작가인가를 직감할 수 있다.
그의 피플 드로잉과 화면 속 춤의 미학이 어떤 스토리를 만들어내면서 완결성을 더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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